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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6-20 14:04
[FICT 코너/ 여성과 세계] 10대 가출 여성의 생존 전략 ‘피해자 되기’
 WRITER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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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omennews.co.kr/news/114933


성매매로 우린 돈 많이 벌어요”

편의점 알바생 비웃는 가출소녀들

몸으로 살아가는 10대 여성들

성폭력 피해자 되기로 자기 보호

성적 이중규범에 균열 내고 있나


▲ 10대의 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사회 담론인 성보호주의는 이들의 경험을 성찰적 언어로부터 방어하면서 이들이 필요할 때면 손쉬운 피난처가 되고 있다. 서울 천호동 로데오거리에서 청소년이동쉼터 활동가들이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족의 빈곤, 학업중단, ‘노는 아이들 집단’에 속한 채 1990년대 말 원조교제를 했던 10대 가출 여성들은 자신들을 업소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들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성적 낙인으로부터 정당화하고자 했다.


성매매를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비교하는 아이들


이들은 본인은 가끔 아르바이트 삼아서 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 일을 하는 성매매 여성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 시기의 이들에게 성적 이중규범은 여전히 자신을 규율하는 규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성적 이중규범은 10대 가출 여성들로 하여금 본인이 사회에서 10대 여성에게 부과한 성적 규범에 맞지 않음을 상기시켜 줬으나 이들은 여성에 대한 성적 이분화를 보다 세부적으로 위계화시켜 여성에 대한 성적 낙인에서 빗겨가고자 했다.


업소의 성매매 여성과 자신을 구별하려는 이들의 행위는 여성에 대한 성적 이분법이 이들에게 자신을 규율하게 만드는 규범으로 유의미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의 빈곤층 10대 가출 여성들은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설명할 때 더 이상 업소 성매매 여성과 비교하지 않았다. 본인의 성매매 경험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준거 틀로 이들이 선택한 비교 대상은 업소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었다.


똑같이 전망 없고 사회에서 인정 못 받는 건 마찬가지인데 본인들은 성매매를 해서 돈이라도 많이 번다고 말하며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다른 10대들을 한심한 인생이라고 비웃었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비교 집단이 업소 성매매 여성으로부터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범주로 급격하게 변화했다는 사실은 생존을 위한 경제적 이익이 여타 다른 사회의 지배적 규범을 압도하고 있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일에 부여되는 사회적 낙인의 여부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갖게 되는 즉각적인 이익의 크기였다.


포스트판옵티콘 시대, ‘가부장적 규범’의 운명?


10대 가출 여성들이 성에 대한 지배적 규범과 맺는 관계가 눈에 띠게 변화하고 있는 점은 단지 아이들이 성매매에 대해 갖는 상식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변화는 ‘집단’에 기반해 작동했던 기존 사회적 규범사회의 집단성이 ‘개인 삶의 운명을 개인에게 지우는’ 시대의 개인성으로 변화하고 있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자신을 다른 성매매 여성과의 관계에서 설명하지 않고 자신이 일을 통해 버는 돈의 크기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 이들의 변화는 나를 집단적 타자들의 시선으로 규율하지 않고 나의 이익의 크기로 규율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푸코는 원형감옥에 대한 비유를 통해 개인이 집단적 지배질서를 통해 스스로를 규율하는 권력의 작동방식을 설명했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들을 집단적 기획들과 연결시켜주던 유대관계들이 녹고 있는(바우만, 2005) 시대에 판옵티콘 사회는 그 영향력을 종전과 같이 행사하기 어렵다.


이제 대규모의 사람들을 통합하고 훈육하던 원형감옥의 기술들은 약화되고 있다. 집단의 기획 대신 개인의 계획, 집단의 지원 대신 개인의 자원에 기대서 살아가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집단적 범주화에 기대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사람들을 규율하게 하는 훈육 권력의 기능이 약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의 개인화가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조건을 포스트 판옵티콘의 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화된 자원에 기대어 각자 생존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집단적 규범은 더 이상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각자의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다. 가진 자원이 부족할수록 눈앞의 단기적 이익에 매달리게 된다. 이런 시대에 여성들을 통제하던 가부장적 규범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생존의 개별화 시대… 10대 가출여성의 생존전략 ‘피해자 되기’


가출한 10대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성을 자원화해 거래해 온 역사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10대 여성들은 그 과정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재미있게 놀아주기’(김연주, 2011) 등의 개인적 전략을 통해 거래적 관계에서 최대한 덜 손해를 보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현상은 ‘피해자 되기’를 하나의 자기 보호 전략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성을 거래하면서 한편에서는 10대의 성이 보호돼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적극 이용해 좀 덜 손해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10대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청소년의 성을 사거나 이를 알선하는 행위, 청소년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배포하는 행위와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행위 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구제해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청소년성보호법으로 청소년이 성매매를 하더라도 청소년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민영선, 2001). 청소년과 성매매를 할 경우 청소년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의 확산, 청소년과 성적 관계를 맺은 성인은 가중 처벌될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은 10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교환하는 불리한 관계에서 청소년성보호를 보호 장치로 전유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여성학자 김주희(2006)는 청소년이 무성적인 존재로 가정됐기 때문에 10대의 성적 실천과 성적 피해는 완벽한 구분이 되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10대 성보호주의 맥락에서 성적 실천을 했던 10대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성적 피해로 구성해 ‘일탈’의 장본인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위치시킬 수 있게 된다.


이들의 집 밖 생활은 집단적 또래 문화로부터 개별화된 생존으로 점차 이동해 가고 있다. 혼자 고시원이나 모텔의 달방을 잡아놓고 인터넷으로 상대를 구하고 그날그날의 숙박비와 끼니를 해결하며 일이 없을 때는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자고 혼자 패스트푸드를 시켜먹는 생활은 이들을 정서적으로 지치게 만든다.


지연(가명)은 계속 되는 혼자 생활에 지쳐 만남용 앱 중 하나인 ‘즐톡’에서 그냥 만나서 노래방 가고 같이 놀 남성을 한 명 구하게 됐다. 지연의 표현대로 ‘외로워서’였다. 이 만남은 애인대행 알바처럼 돈을 받고 성관계를 제외한 스킨십을 허용하며 유사 애인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종류의 관계는 아니었다. 이해관계 없이 서로 만나 놀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관계였다. 지연은 이 남성과 만나 금전적 거래 없이 PC방이나 노래방을 가서 함께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그 남성이 지방에서 와서 서울에서 혼자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자기 사정을 이야기했고 그 남성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집으로 들어가고 난 뒤에도 그 남성은 여전히 잘 대해줬지만 남성이 퇴근한 6시 이후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성적 요구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관계가 섹스로만 환원된 것은 아니다. 남성이 퇴근하기 전 지연은 간단한 가사노동을 하고 남성이 퇴근한 후에는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놀기도 했다. 하루에도 4∼5번씩 요구하는 성적 요구가 힘들었지만 다른 곳에 가는 것이나 여기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 지연은 그 집에 계속 머물렀다. 이 관계는 지연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끝이 났다.


지연은 이 과정에서 임신과 낙태 요구를 경험하면서 본인이 그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판단이 들게 되자 그 남성을 성폭력으로 신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지연이 남성을 성폭력으로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시점이다. 지연이는 좋은 감정이 개입된 상태에서 시작한 동거가 숙식 제공을 대가로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처음의 좋았던 감정은 다 사라졌지만 “어차피 밖에 나가도 마찬가지”라는 판단으로 숙식을 제공해 주는 그 집에 머물기를 선택했다.


지연이가 성폭력으로 고소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은 임신을 하게 된 뒤 남성의 태도를 접하고 나서였다. 지연은 “누구 인생 망칠 일 있냐, 당장 낙태하라”고 다그치는 남성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이 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연이가 성폭력으로 그 남성을 신고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은 바로 그 때다.


거래적 관계의 실패로 귀결되기보다 성폭력 피해자로 귀결되는 것이 자신에게 좀 덜 손해를 보는 방법이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지연이는 예전에도 조건만남으로 만났던 남성을 성폭력으로 신고하려고 했던 경험이 있다. 자신이 제시한 돈을 받기로 하고 그 남성의 아파트에 가서 성매매를 했으나 상대 남성은 돌변해 돈을 주지 않은 채 지연이를 쫒아냈다.


지연이는 이 사건을 성폭력으로 신고하고 싶어 했다. 이 글에서 이러한 상황이 성폭력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논외로 하기로 한다.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약자인 10대 여성이 성매매적 관계 안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편으로 ‘성폭력 피해자 되기’를 붙잡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과 성을 자원삼아 살아가는 10대 여성들에게 “10대의 성은 보호돼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된다. 왜냐하면 관계에서 우위를 지닌 남성으로부터 자신을 합법적으로 보호해 주고 상대를 처벌,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가족, 제도권의 보호에서 벗어나 몸으로 살아가는 10대 여성들에게서 성폭력 피해자 되기를 통한 자기 보호는 종종 발견된다. 때로는 상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성폭력 가해자-피해자 개념을 전유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부당하게 구는 상대를 합법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폭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일하게 되는 곳은 주로 불법적인 영역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합법적인 법의 관계망 안에 잡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던 은수는 그가 일했던 노래방의 실장으로부터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착취를 당했다. 술에 취한 은수를 또 다시 룸으로 넣기도 했고 실제 시간보다 더 짧게 계산해 돈을 지불하기도 했고 돈을 빌려간 뒤 갚지 않기도 했다. 은수는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성폭력 상황을 꾸미기로 친구와 계획을 세웠다.


그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모텔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성폭력 당했다고 거짓으로 말하며 그를 협박하기로 한 것이다. 모텔에서 여성이 돈을 내는 장면이 CCTV에 찍혔을 경우 여성이 자발적으로 남성과 모텔에 들어온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성폭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정보를 얻은 은수는 취한 남성이 직접 모텔비를 내도록 사전에 계획을 세울 정도로 계획적인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제 실행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의 성적 피해 경험을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한 것일까?


‘피해’는 ‘정말’ ‘자원’이 되는가?


이미 10대들 사이에 섹스는 충분히 만연해 있다. 그러나 10대의 섹스에는 보호주의가 쳐 놓은 방어막으로 인해 이미 만연한 섹스에 성찰을 요구할 수 있는 언어가 침투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많은 경우 10대의 섹스는 성찰적 관계 안에 위치하지 못한다. 10대 여성들은 그들의 몸과 성을 광범위하게 자원화 하면서 거래하는 성상품화의 현실과 그 현실에 철저하게 무기력한 ‘청소년 성보호주의’의 모순적 이중주 속에 위치해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2017)은 10대 성보호주의는 10대에 대한 보호라기보다는 성적 시민권을 연령에 따라 구성해 온 근대적 제도(학교, 가족, 결혼, 직업, 군대 등)의 내파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는 성격을 지님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10대 성보호주의는 10대의 성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10대에게 성을 금지시켜 얻어지는 사회적 이익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10대의 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사회 담론인 10대 성보호주의는 이들의 경험을 성찰적 언어로부터 방어하면서 이들이 필요할 때면 손쉬운 피난처가 돼주고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저지른 부당함을 처벌하기 위해 뒤늦은 성폭력 피해자 되기를 선택하거나 성폭력을 이용하는 10대 여성들에 대한 시선은 어떠해야 할까? 대담하고 영악한 여자아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어야 할까? 거대한 성 상품화가 이뤄지는 현실에 무기력한 10대 성보호주의는 10대들에게 역으로 전유되면서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여성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보호되는 것일까? 자끄 아탈리(1996)의 지적대로 생존이 개인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우리의 사고와 역할을 지배하게 된 것은 미로의 이미지다. 복잡성과 뚫고 나갈 수 없는 덤불과 동의어인 미로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단기적 목표를 세워 그저 한 두 걸음만 앞으로 내딛고 그때마다 바로 그 현장에서 소비될만한 즉각적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된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복잡한 미로 속에 던져진 10대 여성들은 한 편에서 성을 거래하다 미로 속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될 것 같으면 즉각적으로 빠져나갈 출구로 그것과 대척점에 있는 성보호주의를 붙잡는다. 몸과 성 이외에 별다른 자원이 없는 채 사회적 관계망과 돌봄에서 배제된 10대 여성들은 자신을 방어하거나 상대의 부당한 행위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제어하거나 책임을 묻기 어려울 때 다시 자신의 몸과 성을 자기 방어의 방편으로 전유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되기는 이들에게 일시적으로 상대에 대한 통제와 처벌의 권한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과정은 결국 10대 여성들이 몸과 성적 존재 이상의 언어와 가능성으로 도약하는 것을 가로막게 된다. 몸과 성적 존재 이상으로 자신의 정체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을 억압’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이들의 선택에 대한 상상력은 자원을 얻어낼 수 있는 성적 대상이 되기를 선택하거나 사회가 보호해줄만한 피해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 이분화의 체계 안에 갇혀 있다. 광범위한 성 상품화와 무기력한 보호주의가 버티고 있는 사회에서 이들은 보호와 성적 대상 모두를 자원화하면서 자신의 몸을 소모시키게 된다.


이때 10대 성보호주의는 역설적으로 이들이 자신의 몸을 소모시키는 과정을 좀 더 유리하게 만들어줘 이들이 몸을 통해 생존하는 과정에 매몰되도록 만들고 있다. 성보호 담론은 실제로 10대를 보호하지도 않을 뿐더러 10대들은 이것으로부터 보호당해주지도 않는다.


10대 여성들은 성적 이중규범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일까? 성적 이중규범은 여성들을 남성과의 관계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효과적인 통제 장치였다. 여성에 대한 성적 이분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낙인을 피하고 성적으로 낙인찍힌 여성의 범주와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남성중심적 성규범으로 자신을 검열했다. 집단적 범주의 정체성은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확인시키는데 중요한 준거 틀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한 규범에 닻을 내리고 있지 않은 채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 이익을 찾아 이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성적 이중규범을 넘나드는 이들의 유동성에서 전복적인 의미를 읽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격적 관계에서 기능적 관계로 이동이 쉬운 것, 성폭력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것 등 이들의 선택지는 결국 기존의 규범이 여성들에게 열어놓은 자원에 대한 접근 방식의 상상력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 안에서 이들은 ‘몸적 존재’ 로 추방당한 채 그 이상으로 도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루만(1997)은 현대적 사회로 이동하면서 자율적 개인이 등장했는데 역설적으로 이 개인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시켜줄 타자를 통해서만 의미가 있어진다는 점에서 타자의존적인 개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생존이 개인화되고 있는 시대에 한 개인의 의미에 대한 확인은 타자와의 관계가 아닌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타자로부터의 승인보다 자신의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즉 다시 말해 자신-타자의 관계보다 자신-자신의 이해관계와의 틀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훈육사회의 집단적 규범의 영향력과 그에 따른 관계의 경계는 변화해 가고 있다. 10대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볼 수 있듯 연애, 성매매, 성폭력의 상호 미끄러짐 속에서 이들이 맺는 관계의 성격은 거래와 친밀함, 폭력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중첩된 모습을 띠게 된다. 10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보호주의이지만 10대들은 섹스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섹스는 이 사회가 섹스의 종류를 구분지어 놓은 연애, 성매매, 성폭력 어느 한 곳에 안착해 있지 않다. 10대의 성보호주의와 성상품화는 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들은 그 안에서 그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10대들은 집과 학교에서만 가출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가출을 하고 있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가출한 이들은 자신의 삶을 ‘고립’시키고 있다. 10대 뿐만 아니라 어쩌면 현재 우리의 삶은 ‘타자화’와 ‘자기고립’ 사이를 오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 성을 자원하는 아이들, 성적 피해를 자원화하는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타자화와 자기고립을 넘어서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좌표축에 관한 일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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